비즈니스 협상

 
작성일 : 14-12-20 15:55
협상 - 거란의 침입(서희,협상을말하다) / 새로운 제안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489  
협상 - 거란의 침입(서희,협상을말하다) / 새로운제안

협상은 어느 정도의 힘을 발휘할까?

협상을 잘하면 상점에서 물건값을 조금 깎을 수 있고, 연봉협상에서 자신의 월급을 조금 올릴 수도 있고, 크게 보면 외국과의 통상협상을 통해 쌀시장 개방의 속도와 폭을 어느 정도 줄일 수도 있다.

그런 정도에 불과할까? 우리 역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한 사람의 탁월한 협상은 우리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고, 수백만 국민을 전쟁의 참화로부터 보호하였고, 평양 이남으로 국한될 뻔했던 영토를 압록강변까지 확대할 수 있게 하였다.


거란의 침입


서기 993년, 거란이 고려를 침입하였다. 거란의 소손녕은 말한다.


“80만의 군사가 도착하였다. 만일 강변까지 나와서 항복하지 않으면 섬멸할 것이니, 고려의 군신들은 우리 군영 앞에 와서 항복하라.”


거란의 역사에서도 80만 명이 정벌 전쟁에 참여한 것은 드문 일이다. 그 군대의 질적 수준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80만이라는 숫자는 매우 위협적이다. 한갓 야만족일진대 그 숫자야 무슨 상관이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앞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당시의 거란은 송宋을 압도하는 강대국이었다.


고려의 초기 대응


거란으로부터 항복을 요구받은 고려, 어떻게 대처했을까?

당시 고려 조정(성종 재위시)은 거란의 침입에 혼비백산하였고 고위 관리들은 갑론을박을 벌였다.

거란에 항복해야 한다는 투항론投降論이 제기되었고, 그와 함께 서경(평양) 이북의 땅을 거란에게 주자는 할지론割地論도 대두되었다. 80만 대군의 거란을 이길 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거의 할지론으로 국론이 결정되려는 때에 서희가 강력히 반론을 제기하였고, 이지백 역시 이런 서희의 견해에 동조하였다. 우선, 거란이 ‘왜’ 고려를 침입했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파악한 뒤에 대응해야 하며, 만약 항복해야 한다면 ‘한 번 싸워보고 난 뒤’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표면적으로만 사건을 볼 것이 아니라 숨어있는 근본 의도를 읽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그 뒤 성종은 말한다.


“누가 거란 진영으로 가서 언변으로 적병을 물리치고 만세에 남을 공을 세우겠는가?”


아무도 대답하지 않을 때에 서희가 나선다.

“제가 비록 부족하오나 어찌 왕명을 받들지 않겠나이까.”


서희와 소손녕의 협상


이리하여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서희와 소손녕의 강화협상이 시작된다.

7일 간에 걸친 강화협상에서 소손녕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당신의 나라는 옛 신라 땅에서 일어났고 고구려의 옛 땅은 우리나라 소속인데 당신들이 침식하였다. 또 우리나라와 접하고 있으면서도 바다 건너 송나라를 섬기는 까닭에 이번 정벌을 하게 된 것이다.”


일단, 외형적으로 거란이 고려를 침략한 이유는

1) 거란 땅인 고구려 옛 땅을 고려가 침식하였다,

2) 고려가 송나라를 섬기고 있다는 이 두 가지였다.

이런 두 가지 침략 이유에 대해 서희는 다음과 같이 반박하였다.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가 바로 고구려의 후계자다.

그러므로 나라 이름을 고려라 하고 평양을 국도로 정하였다. 그리고 경계를 가지고 말한다면 귀국의 동경이 우리 국토 안에 들어와야 한다.

당신이 어떻게 우리가 침범했다는 말을 할 수 있는가? 또 압록강 안팎도 우리 땅인데, 지금 여진이 그 중간을 점거하고 있으며,

그들은 완악하고 간사스러워 육로로 가는 것이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도 왕래하기가 더 곤란하다.

그러니 국교가 통하지 못하는 것은 여진 탓이다. 만일 여진을 몰아내고 우리의 옛 땅을 돌려주어 거기에 성과 보루를 쌓고 길을 통하게 한다면, 어찌 국교를 맺지 않겠는가? 장군이 만약 나의 의견을 귀국의 임금에게 전달한다면 어찌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실로 논리 정연한 반박이 아닐 수 없다. 고구려의 옛 땅은 거란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고려에 속한다는 것을 ‘고려’라는 국호를 들어 설명하고, 거란과 국교를 맺기 위해서는 거란과 고려를 가로막고 있는 여진이 속해 있는 땅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런 주장이 거란 왕에게 받아들여져 소손녕은 서희와 ‘강화협정’을 체결한다.

이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80만 대군의 한반도 침입을 방지하고, 더 나아가 여진이 차지하고 있던 강동 6주(흥화진, 용주, 철주, 통주, 곽주, 귀주)를 고려의 영토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 출처 : "서희, 협상을 말하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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