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와 사와코 씨는 일본의 인기 주간지 (주간문춘)에
21년 동안 ‘이 사람을 만나고 싶다’를 연재해 왔습니다.
그녀의 경험담에서 우러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1.
남의 이야기를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듣기란 불가능하다.
귀와 뇌가 상대방의 말을 취사선택할 뿐 아니라,
사람마다 취사선택하는 부분이 달라서
어떤 사람들끼리의 조합인가에 따라
대화의 재미도 달라진다.
하지만 흘러듣다가 중요한 포인트를 놓쳐서는 안된다.
숨은 보물은 상대의 아주 사소한 말끄트머리에
감춰져 있는 경우가 많다.
2.
노인뿐 아니라 사람마다 말하는 속도가 다르다.
천천히 말하는 사람과 인터뷰할 때, 상대가 대답도 하기 전에
내가 미리 대답하는 경우가 있다.
성질이 급한 내가 가끔하는 실수다.
대답을 해야 할 상대가 대답하지 않으면
한동안 침묵이 계속된다.
‘어쩌지? 이 대답은 포기하고 다음 질문을 할까?
아니면 더 기다려 볼까?’
망설인 끝에 같은 질문을 다른 말로
바꿔볼 때도 있다.
이 방법이 효과적일 때도 있지만 자주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다.
말을 바꿔서 질문하거나 대답을 재촉하면 얼핏
친절하게 보이나, 결국 상대방을 다그치는 꼴이다.
3.
인터뷰어가 지나치게 수다를 떠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상대는 내가 왜 이 사람 이야기를 한없이 들어줘야 하나,
적잖이 기분이 상한다.
일단 불쾌한 기분으로 인터뷰어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면,
어떤 질문을 받아도 제대로 대답할 기분이 나지 않는다.
내 이야기가 마중물 역할을 해 상대의 뇌를
촉발하는 경우는 자주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내가 추억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상대의 얼굴에 희미한 그늘이 진다 싶으면
얼른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런데 갑자기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엔 좀
어색하다 싶어 계속 떠들다보면 종종 인터뷰를 망친다.
잊지 말아야 한다.
내 이야기는 그저 촉매제 역할을 할 뿐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것을.
4.
사람은 저마다 상대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한 사람에게 자신을 백 퍼센트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자신이 본 모습을 그 사람의 전부로 믿는다.
그래서 자신이 모르는 의외의 면을 발견하면 충격을 받는다.
사람은 누구나 360도의 구체로,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그 각도를 조절하는 것이 아닐까.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북북서의 각도를 보여주고,
애인 앞에서 남남서의 각도를 자신을 드러내는 식이다.
이미지는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사람이겠지?’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만나보면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어.’하는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21년간 (주간문춘)의 대담을 진행하면서
몇 번이나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른다.
“만나보니 좋은 사람이더군요.”
“인터뷰 전에는 그 사람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더니!”
사람이란 정말 직접 만나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다.
5.
“어떤 칭찬에도 동요하지 않는 사람도
자신의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상대에게는 마음이 흔들린다.“-자크 워드
“그저 들어주는 것.
그것이 상대의 마음을 여는 열쇠입니다.”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다정한 태도로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
그것은 내 생각을 전달하려 하거나,
상대를 설득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오로지 듣는 것이다.
조용히 ‘난 당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어요.’ 또는 ‘더 듣고 싶어요.’라는
신호를 보내라.
그리하면 상대는 마음속에 감춰둔
생각을 알아서 언어라는 형태로 끄집어낸다.
-출처: 아가와 사와코, (듣는 힘), 흐름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