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어를 못해도 성공하는 데 지장이 없다'고 말하고 싶다.
미국으로 공부하러 간 나는 어린아이에서 노인까지, 심지어는 거지까지 누구든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라면 부러워했다. 영어만 잘할 수 있다면 공부는 물론, 무슨 일이라도 해서 성공할 수 있을것만 같았다. 그러나 막상 영어로 의사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느낀 것은 공부를 잘하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은 영어를 잘하는 것과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갓 이민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사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이 어려움은 몇 년이 지나도 극복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민자들은 자리를 잡고 성공한다.
미국인들이 영어를 잘한다고 세계 어디를 가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즉, 영어를 잘하는 것만이 성공의 기본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얘기다.
다양한 언어를 구사한다거나 화술이 좋으면 성공을 위한 좋은 도구 중 한 가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것으로 상대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전달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말 잘하는 능력' 이상의 그 무엇이 필요하다.
사람은 믿는 사람의 말만 듣는다.
대학 다닐 때 철학에 깊이 심취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하여 끊임없이 많은 공부와 명상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인생의 의미에 대하여 내게 이야기 하곤 했는데,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보냈다.
그런데 이 친구가 했던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의 철학 강의를 들을 때는 주의를 기울이며 열심히 받아 적었다. 친구보다는 교수가 더 학문적 깊이가 있고,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때로 내용보다도 말하는 사람의 배경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말하는 사람의 배경에 따라 듣기도 하고, 흘려 보내기도 한다. 그러므로 내 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나는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상대에게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사람의 복장과 태도가 중요한 것은 그래서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내용을 전달하는 사람에게는 믿음이 더 간다.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잘 숙지하고 있는 모습은 상대에게 신뢰를 심어준다. 사람들은 믿을 만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의 말만 듣는다. 믿을 만한 사람으로 상대에게 비쳐지는 것은 의사전달의 가장 기초가 된다.
어떻게 하면 상대를 설득할 수 있을까?
우리가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 생각을 상대에게 전달하고 상대가 움직여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상대를 움직이지 못하는 프리젠테이션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떻게 하면 상대가 움직이도록 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최근의 연구 결과를 통해 몇 가지 방법을 배워 보자.
첫째, 일방적인 주장이나 설명보다는 상대의 주장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는 프리젠테이션은 설득력이 없다. 상대의 주장도 함께 이야기함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둘째, 사람은 가장 최근의 것을 더욱 잘 기억한다. 따라서 자신이 강조하는 것을 가장 나중에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특히 프리젠테이션의 내용이 상대에게 익숙하지 않은 내용일 때는 더더욱 그렇다.
셋째, 상대를 구석으로 몰아붙여 방어하게 만드는 대화법은 피해야 한다. 협상은 상대를 이기려는 것이 아니다. 설득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해야 한다. 상대가 방어 자세를 취하면 설득할 수 없다. 상대 의견을 묵살하는 태도는 상대로 하여금 논쟁하고 싶도록 만든다. 이러한 심리적 움직임은 설득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상대의 의견에 공감을 표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와 상황 설정이 중요하다.
김도박 씨는 요즘 경제적으로 대단히 어렵다. 내국인이 출입 가능한 카지노에 드나들기 시작한 후부터 잃기 시작한 돈이 자신의 능력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어젯밤 횡재할 것 같은 꿈을 꾼 김도박 씨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운을 카지노에서 시험하고 싶었다. 그런데 수중에 현금이 한 푼도 없다. 누군가에게 빌려서라도 카지노에 가야겠는데 떠오르는 사람은 고등학교 동창생 몇 명뿐이다.
김도박씨는 어떤 방법으로 동창생들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 가장 손쉽고 편한 방법은 전화다. 편지나 이메일도 있다. 그리고 가장 귀찮고 힘든 방법으로는 직접 찾아가서 얼굴을 마주보고 부탁하는 것이다.
답이 잘 떠오르지 않으면 부탁 받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고등학교 동창이 돈을 빌려 달라는데 어떤 방법으로 접근할 때가 가장 거절하기 어려울까? 직접 찾아와서 얼굴을 보며 부탁할 때다. 거절하기 쉬운 것은 편지나 이메일을 통한 접근일 때다. 어떤 방법을 택하느냐에 따라 상대를 설득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영향력이 달라진다.
어떤 방법을 택할 것인가에 대한 몇 가지 원칙을 소개하자면, 상대가 거절할 가능성이 있는 내용을 전달할 때는 가능한 한 인간적인 접촉이 많은 방법을 택한다. 반면에 상대와 갈등이 야기될 수 있는 사안은 이메일이나 편지와 같은 방법으로 전달한다. 내 입장에서 편리하고 손쉬운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나올 수 있는 사안의 내용에 따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무리 부패한 공무원이라도 사전에 뇌물을 받았다고 해서 공개적인 자리에서 특별히 봐 주지 않는다. 그러나 같은 내용의 부탁을 둘만의 장소에서 하면 쉽게 들어준다. 주변 환경 설정이 프리젠테이션의 효과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장소에서 어느 시간에 프리젠테이션을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협상의 준비 과정에서 꼭 다뤄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대를 중심으로 프리젠테이션을 하라
얼마 전 나는 한 벤처 회사의 사장으로부터 유전공학과 정보통신이 결합된 바이오인포매틱스라는 분야의 사업을 시작하는데 있어서의 투자 자금 유치를 위한 프리젠테이션을 받았다. 경영 및 법률 분야의 배경과 귀 너머로 익힌 약간의 정보통신에 관한 지식이 전부인 내게 바이오인포매틱스라는 분야는 너무나 생소했다.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는 벤처회사의 사장은 듣는 사람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프리젠테이션을 하기 전에 비공식적인 몇 번의 접촉을 통하여 바이오인포매틱스와 관련된 시장 보고서와 논문을 보내왔다. 이러한 상대의 배려로 새로운 분야의 사업성을 검토하는 데 커다란 어려움이 없었을 뿐 아니라 호의적인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프리젠테이션 준비를 잘하는 사람은 항상 듣는 사람의 편에서 생각한다. 그러면 듣는 사람의 어떤 점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준비해야 할까?
첫째로 프리젠테이션의 주제에 대한 상대의 이해 능력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데 움직임을 기대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상대의 수준에서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라. 만약 글로 이해시키기는 것이 힘들다고 판단되면 도표를 준비하고 사진을 준비할 수도 있어야 한다.
둘째로 상대의 프리젠테이션을 듣는 동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건을 팔기 위한 것인지 혹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것인지 동기에 따라 프리젠테이션의 내용과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 자신의 필요를 충족 시켜주는 내용에 사람은 관심을 기울이고 움직인다. 상대의 도익에 초점을 맞추고 준비하라.
셋째로 상대의 배경을 생각한 프리젠테이션 준비다. 환경 문제에 민감한 사람에게 공해와 관련된 사업에 투자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건설회사에서 교회 신축 공사를 수주하기 위한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 사찰을 많이 지었다는 내용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대의 배경에 민감하라.
출처 : 상대를 내편으로 만드는 협상기술 (김병국 저, 더난 출판)